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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신라시대의 성문화

신라의 최고의 요부 '미실'은 우리가 많이 알다시피

 드라마 '선덕여왕' 에서 많이 봐왔다.

미실은 신라의 왕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3명과 태자 동륜.

그리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 4명 등 무려

8명을 노리개로 삼으면서 왕실을 좌지우지 했었던 여인이다.


화랑세기에 미실은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함은 옥진을 닮았고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았다며 옥진이 좌우에서

떠나지 않으며 교태를 부리는 방법과 가무를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진흥왕은 미실과 한번 잠자리를 가진 후 두번 다시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색공지신

신라시대에는 대대로 왕과 그 일족에게 색을 바치는

'색공지신' 이라 불리우는 신하가 있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색공으로 왕과 왕족들에게 자식을

낳아주는 것이다.

색공지신들은 색공의 대가로 정치적 지위와 격상된 골품의

지위를 얻기도 했다.

미실 또한 색공지신으로 무려 3명의 왕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동성애의 표본 화랑

신라의 화랑은 청년 수양 단체로, 귀족의 자제 중 용모가 준수한 자를 모아

심신 수련과 학문 수양 등을 연마하도록 했는데,

삼국사기에서는 화랑을 잘생긴 남자를 곱게 꾸며 화랑이라 이름 짓고

그들을 받드는 무리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화랑 사이에서는 동성애가 빈번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화랑의 남색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으며, 화랑은 남색집단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그들 스스로의 단결력을 높이기 위함이라 한다.



남녀혼탕

독일이나 일본에 여행을 가서 남녀혼탕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한국인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에는 남녀혼탕이 대중적이었다고 한다.

신라 법흥왕 때 처음으로 사찰마다 공중목욕탕이라 불리는

남녀혼탕을 설치했다.



 근친상간

가족 혹은 가까운 친척사이에 이루어지는 성관계인

근친상간은 신라시대에도 왕권확립을 위해 친척간 혹은 남매간에

자주 이루어졌다고 한다.

신라 왕족의 족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성골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활발하게 행해졌다고 한다.



마복자

신라시대에는 배를 문지르면 아버지가 된다는 의미의

'마복자' 라는 충격적인 풍습이 있었다.

문지르다, 부비다의 "마"

배의 "복"

이 풍습은 임산부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함으로써

그 남자가 임신한 아기의 아버지가 된다는 톡특한 풍습이다.

이는 특히 화랑 사이에서 성행했다고 한다.

계급이 낮은 낭도의 아내가 남편인 낭도의 아이를 임신하면

계급이 높은 화랑과 성관계를 맺어 

화랑이 태어난 아이를 친자식처럼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대부제도라고 할 수 있다.